내 맘 같지 않은 반가운 책
이 책의 느림이 참 반갑다. 작게 조곤조곤 말하는 듯한 글이 반갑다. 이렇게 또박또박 한 글자씩 읽게 되는 글을 얼마만에 읽는지 모르겠다.
살아가다 보면 나이를 먹고, 또 먹은 티를 내느라 나잇값을 한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공과금 영수증처럼 가만히 시간만 지나도 먹는 것을, 그에 맞춰서 사느라 나는 얼마나 더 피곤해진 걸까? 늦은 사랑을 하는 친구에게 “좋을 때”라는 둥, 사랑을 잃은 친구에게 “그때는 다 그렇다”는 둥, 인생 다 살아본 사람처럼 “나도 너 때는 그랬다”는 말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너무나 부끄럽다. 내 인생을 폭주기관차에 태우고 앞뒤 보지 않고 살아온지라, 지나보니 나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었다. 내 자신을 제대로 대면한 적이 없는 인생이 남들 앞에서 아는 척이라니...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그래서, 나도 느려야 하나? 항상 빠르게 살다가 느리게 사니 어떤 게 좋나? 내가 지금 너무 빠르게 사는 건 아닐까? 시간은 사람마다 다 똑같이 주어지고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데 빠르고 느린 게 어떤 거지?
제목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내 생각들과는 하나도 맞지 않는 책이다. 저자는 원래 느린 사람이다. 이 빠른 세상을 느리게 느리게 걸어왔다. 주변 사람들이 빠르게 빠르게 그를 스쳐지나갈 때, “어쩐지, 계속 조금 어지럽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삶은 이제 너무나 멀어지고 삶은 그에게 상처를 남기지만, 담담하게 말한다. “오히려 나는 위로받고 있었다. 내 맘 같지 않은 삶, 내 맘 같지 않은 지금에.”
느림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내게 “나도 이 사람처럼 느리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빠르게 흐르던 개울 물줄기가 도도하게 흐르는 강을 만나 함께 흐르는 것처럼, 내 인생의 시간을 품고 느리게 흘러가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부제처럼 “어쩌면 누구나 느끼고 경험하고 사랑했을 이야기”겠지만, 삶을 어떤 속도로 살아내느냐는 그것을 보는 시야마저도 변하게 하나보다. 마치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 안에서 보지 못하는 게 더 많은 것처럼.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여정은 오랜만에 떠나는 기차여행 같을지도 모르겠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중에 만나는 멋진 풍경들을 보기 위한 여행이랄까.
그래서 “10년 후 20년 후 그보다 더 후에도, /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가 꿈꾸는 글을. / 나는 10년 후 20년 후 그보다 더 후에도, /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저자의 말이 좋다. 10년, 아니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니더라도 계속 읽고 싶은 작가가 생겨 이 책이 너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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